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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불맛을 아십니까?

에베소서 6:18-20


본문: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 멈출수 없는 바울의 사명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두 가지의 거북한 마음에서 왔다. 첬째, 바울은 회심 하기 전 예수의 추종자들에 대한 불만 의식이 가득했던 자이다. 그 다음 그는 극적인 회심 후 새로운 관점의 불만이 생겼는데 바로 유대인 기독교인의 할례와 전통의 강요에 대한 불만 의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거북했던 불만의식을 ‘거룩한 불만족’으로 바꾸신다. 이것을 우리는 ‘소명’ 이라 한다.


  •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현재 누군가에게, 교회에게 당신의 소명을 위해 중보기도를 부탁할 만한 거룩한 불만족이 있는가? 우리가 잘아는 모세의 삶을 보라. 그의 소명도 자기의 민족이었던 히브리인들을 압제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던 이집트에게 있었다. 특히 내 경험적으로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소명의식이 남들보다 강하다. 그 가족가운데 장애와 같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훗날 의료계에 몸담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 한 사림의 불만의식은 어떤 한 계기, 상처났던 경험, 살아온 배경등에서 올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실 의식의 한복판이나 구석에 불만의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불만의식을 반드시 하나님이 만저주셔야 한다. 십자가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 불만의식은 그저 일개 사회의 반항만 일삼는 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시태어난 불만의식은 세상을 뒤 흔드는 사명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반항이 바뀌어 반향의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 우리는 그 에너지를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히틀러가 될 수 도 있다. 불만 의식이 내 존재를 압도하면 살인이나 자살을 할 수 있는 힘도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로마서 12:21 우리는 이 불만의식을 선으로 악을 이기는데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 내 아들 창성이가 요새 운동을 한다. 창성이에도 자기가 약한것에 대한 불만의식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창성이가 8주동안 PT(근력운동)를 자청하면서 그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만한 교훈을 스스로 터득했다. 창성이는 “만약 나에게 동기부여 마음, 사명이 있다면 그 어떤 문제가 왔을 때 그 문제는 나를 넘어트리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Mental Grit! 불만의식이 거룩한 불만족이 되면 그곳에 창의력, 돌파력 까지 따라 붙는다.


  • 사랑의 교회 부흥회를 마치고 난 바로 다음날 내 아버지 목사님께서 지난 4년 동안 몸소 사명감으로 일궈 오셨던 미국 중부 노회를 창립예배 에피소드?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노회 창립을 위해서 한국의 장로교 총회 인사들이 총 출동하셨다. 내 안에는 점점 불만의 씨가 싹을 트기 시작했다. 얼만큼의 재정이 들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얼마나 베베? 꼬였는지 그 노회 창립예배의 모든 순서가 허례허식으로만 느껴젔다. 나는 과연 저 예배 안에 생명력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전히 정치쇼 같이 보였다.

  • 그 노회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영상과 사진을 찍어드리기 위해 갔던 내가 총회장님의 설교를 듣다가 카메라를 내려놓은 사실이다. 총회장님의 설교의 서두가 현재 한인 이민 교회를 위협하는 이유가 미국의 동성애 문제라는 것이었다. 물론 틀리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흔들고, 젊은이들의 사상을 물들이는 거대한 물결이 맡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소리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기독교의 위기를 잘못 잡고 있는 총회장님의 설교가 너무 거슬렸다. 과연 동성연애 커플이 한인 교회 목사에제 찾아와 결혼 상담과 결혼 주례를 요청받은 케이스가 한명?이라도 될까?

  • 나는 현재 교회의 위기는 동성애가 아니라 다음세대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 관점이 여전히 협소하고 어른들 앞에 주제 넘은 발언인것을 알면서도, 현재 당면하고 있는 다음세대들의 떠나버린 메마른 사막을 보며 ‘비야 와라’ 할 수 없는 상황같다.


  • 통계에 따르면, 아니 피부로 느끼는 바 현재 엠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교회의 이중적인 모습과 권위주의적인 모습이다.


  • 과연 우리의 선배 목사님들에게 이 다음세대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예산, 기도)을 위한 노력이 있을까? 없다고 해도 주제 넘는 소리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 어른들은 정확한 문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내 안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분들을 마음으로 내내 정죄했다.


  • 그런데 더 재미난? 사실은 노회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는 도중 갑자기 위경련이 시작됬다. 얼마나 아픈지 5분마다 한번씩 위가 쪼이기 시작하는데 정말 침대를 붙잡고 엎드려졌다. 결국 참고 참다가 안되겠다 싶어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응급실에 갔다. 알다시피 미국은 한국 병원 처럼 별다른 처방도 없다. 환자는 죽겠는데, 그들은 무심하리만큼 태연했다.

  • 침대에 누워 처방해준 끈적한 약을 한컵 마시고 누워있는데 진통이 조금씩 가라안는것 같았다. 이제 정신이 좀 들자 사색타임이 시작되었다. 성령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제레미. 너는 한 입으로 선과 악을 내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들자 밤새 내내 아팠던 진통의 이유같았다. 노회 예배 하루 전만해도 사랑의 교회 청년부 부흥회에서 그렇게 복음을 외치고 기도인도했던 내 입술이 불과 다음 날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내 정죄했던 입술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안았던 것이다.


  • 나는 내 입술의 죄를 침상에서 회개했다. 그 어른들도 젊었을 적 나보다 더 뜨거우면 뜨거웠을 분들이다. 내가 현재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세계는 내 좁은 생각보다 광대하시다. 또 훗날 이 노회가 나와 내 교회 사역을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랑의 교회 청년부 부흥회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노회의 일을 마주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한 에피소드같지 않다.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바로 이 마음을 주셨다. ‘불만으로만 끝나지 말고. 거룩한 불만족이 되게 하라. 그 일을 너와 너 교회가 해라.’


  • 성령님은 꺼저가는 다음세대들의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할 사명을 나에게 주셨다. 내가 살아가는 이민의 땅의 다음세대들에게 다시한번 부흥의 날을 주시기를 기도하게 하신다. 교회로 부터 상처와 오해로 멍들어 버린 이민자 다음 세대들이 다시 복음 앞으로, 교회로 귀환하는 부흥이 일어나는 불씨를 일으키는 자가 되게 하실것이라는 마음이 싹트고 있다.

  • 지금 한국 뿐만 아니라 이민 교회의 다음세대 사역은 그야말로 최저점이다. 코로나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이민 교회 열 손가락안에 드는 교회의 청년부 중에 100명이 넘는 교회는 몇교회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흥은 늘 최저점에서 일어났다. 예수의 등장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300년의 암흑기 후에 일어났다. 온세상의 질서를 거꾸로 뒤엎으신 대 격변. 우리나라의 평양의 부흥도 그 당시 암담했던 1800말-1900초 국제정세, 사회위기 가운데 교회에 주신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회개로 말미암아 일어났다.

  • 내가 오늘 바울 처럼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중보기도가 있다. 이 시대 MZ세대들을 깨울 수 있는 Revivalist가 되도록 기도를 부탁한다. 다음세대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를 바란다. 다음세대들의 부흥사가 되도록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


  • 뉴욕 부르클린 교회의 짐심발라 목사님은 성령에 대해 이렇게 외친다. 이 교회는 매주 화요일이 되면 2천명이 넘는 기도의 용사들이 모여 중보기도한다. ”성령이 다스리는 삶의 역설은 힘을 얻으려면 힘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문제를 만나면 더 열심히 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를 더 오래한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내 힘으로 사랑하기 위해 애를 쓴다. 두려움을 느끼면 더 용기를 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한 결과는 어땟는가? 나는 별 효과가 없었다. 기독교는 스스로 노력하는 종교가 아니라 능력의 종교다. 성령의 능력과 권능의 종교인 것이다.“

  • 성령은 불과 같은 속성을 같고 있다. 1) 불은 태운다. 2) 불은 소독하고 치유한다. 3) 불은 온도를 올려준다. 4) 불은 빛이 되어준다. 이처럼 성령의 불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의 밧줄을 태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 했다(눅3). 성령은 성도들의 기도의 온도를 올려준다. 성령의 역사는 늘 성도들의 기도와 동행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빛이 되어 주셔서 우리안에 하나님의 비전을 밝혀 주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 사단은 우리를 말뚝에 연약함의 밧줄을 묶어 놓고는 힘을 더 쓰게 만든다. 그리고는 코끼리 처럼 나는 힘이 없다고 느끼게한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은 무엇인가? 성령이 역사하시면 타협하지 않는다. 돌려 역사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우리를 얽메우는 인간의 힘, 사단의 밧줄을 태워버리신다. 사탄은 우리를 묶고 Entangling 하고, 성령은 우리를 가능케 Enabling 하신다는 것을 기도할 때마다 주장하라.

  • 당신 안에 있는 거룩한 불만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은 무엇인가? 성령은 우리 안의 불만이 거룩한 기도의 ‘불맛’이 되게 하실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비전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내 욕망인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아는가? 그것은 우리가 현재 그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에 있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 나는 현재 노력하는가에 있다. 성령은 인격적이시라 근심할 수도, 소멸할수도 있는 뼈때리는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거룩한 불만족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기도의 불맛을 경험해야만 한다. 순간 타오르는 불꽃놀이 폭죽과 같은 기도가 아닌 아궁이를 데우는 깊고 지속적인 기도가 회복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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