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16-19
본문: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우선 기도의 응답이 안되는 이유 네가지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와 같다. 우선 만고의 법칙이다. 안하기 때문에 응답을 못받는 것이다.
두번째는 의심 섞인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야고보서 1:6-7
세번째는 의심없이 기도를 백번 드린다 해도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실 수가 없다. 어린 아이에게 병원의 메스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게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욕심으로 구하는 60억 인구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신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야고보서 4:3
마지막으로 제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과 짝이 맞는 기도를 의심 없이 드린다 할 지라도 그 응답을 아직 감당할 수 없다면 주시지 않는다. 대신 그 응답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주신다.
그렇다면 이제 지속적인 기도가 안되는 이유도 살펴보자.
1) 바쁘기 때문에. 우선순위의 문제다. 그렇다면 어른시대는 덜 바빳을까? 오히려 요즘 같은 디지털 사회는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에는 누릴 수 없던 편리와 빠름을 제공해 주지 않나?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사회에 현대인들은 숨쉴 시간이 없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왤빙, 소확행 같은 여가활동 지출비가 많아진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2) 기도없어도 살만하다고 느끼기에 그렇다. 각자 생활 능력의 문제인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관계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한가하고 능력이 없으셔서 기도하셨을까?
3) 기도를 문제를 해결을 위한 순간적 방편으로 생각한다. 해결받고 나면 함흥처사다. 맥도날드 식의 기도를 한다. 물론 기도의 목적 중에는 응답을 받기 위함이 있다. 하지만 기도는 문제해결하는 것 자체를 넘어 문제를 자신있게 대면하고 돌파하기 위한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원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기 쉽지만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는 많이 어려워한다. 성령을 원하면서도 임할까바 두려워한다.
예수님의 시간활용 법칙을 잠시 정리하자. 예수님은 제한된 시간을 인식하셨다. 공생애가 시작된 3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세우시고, 병든자들을 고치셔야 했던 꽉찬 시간들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예수님은 앞에 사건이 아닌 목적에 따라 사셨다.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목적에 따라 시간을 통제하는 법을 아셨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그의 하루 루틴 가운데 기도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셨다. “그러나 예수의 소문이 더욱더 퍼지니, 큰 무리가 그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다.” 누가복음서 5:15-16
기도는 나침판과 같다. 나침반은 늘 북쪽을 가르킨다. 변화하고 분주한 현대인들이 일상 가운데 기도의 나침판을 손에 집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원과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내 인생을 창조자의 축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시간의 끝을 인식해야 한다.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참소망을 충전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5:13
4) 기도를 영원과 연결 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영원과 접촉하는 것이다. 천국과 친해지기는 것이 기도이다. 천국가서도 영원한 삶속에 예수님이 불편하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은 천국같은 지옥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늘 영원과 연결하셨다. 십자가의 대속 이후에 돌아갈 하나님의 우편을 바라 보셨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누가복음서 9:29
5) 기도는 능력을 저장하는 저수지다. God’s dam 릐앙스가 이상하지만. ‘갓댐’이다. 기도가 바로 응답 받지 않고, 길게 기도하게 되는 기도일수록 자신의 소명과 가까운 기도일 것이다. 오래 기도하는 기도는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낚시 대가들은 안다. 대어일 수록 단숨에 끌어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어떤 대어들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배 위에서 몇시간씩 혈투를 벌인다. 우리는 가치있는 일에 대하여 짧던 길던 기도하고 응답받은 경험들이 많아야 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청소년기 한참을 방황을 했을때, 골방에서 나를 위해 기도 많이 하셨다. 수 년을 눈물로 기도하셨다. 왜 그럴까? 그만큼 내가 대어라는 뜻이 아닐까? ;; 나는 어머니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은 나를 사로 잡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목사가 될 줄이야.
6) 기도는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다. 내 아들 창성이가 운동을 한다. 창성이를 운동시키려고 하니까 꿈을 주는 것만으로 안되드라. 피티(personal training)를 만나 계획해야 하고, 루틴을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 많지도 않게 푸시업 10개부터 시작하자고 해야 한다. 앞으로 창성이의 삼년 후를 생각해보라. 반복된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근력은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신감을 준다. 마찬가지로 영적 근력은 현실의 문제를 대하는 자신감을 준다.
“쉬지 않는 기도는 문제를 대하는 자신감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항상기뻐하고 싶은가? 범사에 감사하고 싶은가? 항상 기도하라! 그래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수 있다.
믿음낙천주의를 경계하라. 낙천주의와 긍정적인 것은 다르다. 낙천주의는 늘 꿈에만 젖어 산다. 감아 떨어저라 한다. 꿈은 있는데 꿈을 이룰 과정을 생략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을 깨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결심이다. Prayer is not an option. Prayer is a commitment! 우리의 기도도 성장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라. 하지만 부탁에서만 멈추지 말라. 내 이모님 되시는 서인애 목사님께서 늘 해주신 말씀을 기억한다. “기도응답은 너가 해서 받아라.” 그렇다. 기도를 부탁하는 것에서 내 기도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내 짐은 내가 해결하는 기본 자세 위에, 서로의 짐을 들어 줘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이다. 그리고 기도를 문제, 사건 앞에서만 하지말고 예수님, 다니엘, 신앙의 선배들 처럼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재능은 성실을 이길 수 없다. ‘막부작침’이라는 말 처럼. 철이 침이 되는 것은 지속성이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메뉴얼화하라. 기도를 이상화 하지 마라. 우리가 모든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그 함정에서 나오라. 기도에 대한 정의를 머리에 장착한 것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기도가 ‘호흡’, ‘대화’, ‘속삭임’ 등으로 정의한 나머지 스처지나가는 ‘하나님’이름을 부른 것 을 기도라고 주문을 걸기도 한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이 스처지나가는 과정도 분면한 은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머물지 말라. 경험적이다. 이런 사람들은 깊은 기도, 은혜에 충만한 기도의 자리를 누릴 수 없는 것이 안타가운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꼭 교회를 가서 기도해야하느냐 반문한다. 교회에서 주관하는 기도관련 사역들(새벽기도, 수요기도, 철야기도 등등)에만 보여야 하느냐고 한다. 물론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더 해야 하는것이 당연지사다. 교회가 주관하는 기도 사역에 억지로 끌고 간다고 해서 대부분 좋을 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번을 참여 하는 것이 10번을 억지로 수동적으로 오는 것보다 낫다. 교회가 기도하자고 하는 것은 기도 사역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준비한 기도의 자리를 활용하라는 권유다. 기도는 율법적이어서 안된다. 강요로 되어서는 안된다. 기도에 대한 반발만 생기게 된다. 왜 그럴까? 그런기도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을까?하는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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